쌍둥이 콤플렉스 (R-15)

2024. 2. 24. 22:36카테고리 없음

 

 

 

   “기다려...! 잠, 깐만!! 욘 쨩......!”
 
    수업과 수업 사이, 해 봤자 겨우 10분 남짓인 시간. 욘구사 크라이나의 부름에 반쯤 못 미덥지만서도 결국 발걸음을 옮긴 사에구사 아키나는 지금 크게 후회한다. 반듯하게 자신의 이름이 쓰인 락커 속으로 한껏 구겨진 사에구사 아키나는 곧이어 온몸을 누르며 저와 함께 비집고 들어서는 그에 적잖이 당황한다.
 
 
 
    아키나가 부족해. 읏.... 너 진짜...! 제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겨우 알아들을 정도의 뭉개진 발음으로 말을 했다. 이런 짓에 자각도 없는지 태연한 표정을 하고서. 꼴을 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그가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거야.... 걱정의 형태를 띈 경멸이 끝에 닿기도 전에, 좁은 공간을 여러번 사부작거리니 움직일 공간이 더는 남지 않게 됐다. 자세히 보니 입가에 피가 나 있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불편한 자세에서도 힘겹게 손을 빼어내 닦아 주었다.
 
 
 
    ”이거 키스하자는 뜻이야?”
    “켁...! 케켁. 콜록콜록. 뭐? 그럴 리 없잖아...!“
    ”그치만... 아키나가 나를 너무 야하고 다정한 눈빛으로 쳐다봤는걸? 방금 그 얼굴을 보고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하필 그 타이밍에 침을 삼키던 터라. 넘겨 보내지 못하고 숨을 턱 막아 버린 탓에 제대로된 저항을 하지 못했다. 됐고, 아까 무슨 일 있었는지나 말해.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아키나. 정말 내가 뭐 하다 왔는지 궁금해? 알면 놀랄지도.”
    “뭐?”
    “어떤 멍청이들이 아키나 얘기를 하더라고. 잘하는 것도 없는데 학생회에 들어앉아 있다나 뭐라나. 아키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서 밟아 줬어.”
    “....”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아키나는 나만 부르고 나만 떠올릴 수 있는 거잖아 그치. 욘구사 크라이나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재주를 가졌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하고 저런 말을 잘도 내뱉었다. 그의 입에서 촉수가 달린 문장이 튀어나올 때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강해져갔지만 어느새부터인가 제 허벅지 사이에 그의 허벅지가 고정되어 있어 어느 방향으로도 도망칠 수 없었다.
 
 
 
 
    “나 섰어.”
    “너 진짜 미쳤지?”
 
    그의 말에 팔딱 뛰며 있는 힘껏 밀치면서 노려봤다.
 
 
    “아니~ 아키나가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을 해 주길래. 좋아하니까 당연한 거잖아? 그러니 그렇게 보지 말아 줘.”
 
너는 이런 게 당연해? 라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라 넘실댔지만 내뱉어 봤자 딱히 충고가 되진 않을 것 같아 관뒀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돌아오든 피곤한 건 매한가지였다.
 
 
    휩쓸고간 폭풍우에 겨우 쉬어가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그의 손이 제 셔츠에 닿더니 단추를 몇 개 풀어냈다. 목에 머물던 얼굴이 어깨와 쇄골을 지나더니, 풀어헤친 흉부에서 멈췄다.
 
 
    “윽...! 뭐, 뭐 하는 거야!”
    “내가 아키나를 도와줬으니까... 아키나도 나 좀 도와줘. 충전이 필요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게 무슨.”
    “냄새만 맡을게. 응? .... 신기해. 아키나 냄새는 이쪽이 제일 잘 나는 것 같아. 아키나는 운동도 잘 안 하는데... 타고난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의 말에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던 사에구사 아키나는 결국 모든 걸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게 수치스러움은 이미 끓는점을 초과하여 범람해 버린 지 오래라. 한계에 도달해 시야마저 아득해져 버렸으니까.
 
 
    “아키나...! 나한테 기대주는 거야?”
    “마음대로 생각하든가....”
    ”그래? 그럼 여기서 더 나아가서~ 살짝 만져 보는 것도 괜찮겠네?“
    ”뭐...? 야, 너...!“
 
 
    이젠 그의 무릎에 거의 앉은 수준이었다. 지금으로선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맞춰 따라가기도 벅찼다. 앞선 자극에 겨우 적응하고 있으면 새로운 자극이 건너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래에서 불쑥 손을 넣은 그는 얼굴이 있는 쪽의 반대편에 손을 가져다댔다.
 
 
    ”읏.......“
    ”왜 여긴 유독 냄새가 좋은지 알 것 같아. 말랑말랑하네. 기분 좋아.“
    ”하, 지 마....“
    “내가 봤을 때는 말만 그렇게 하지 아키나도 기분 좋은 것 같은데? 귀도 그렇고 어깨까지 전부 빨개졌잖아.“
 
 
    온몸에 힘이 풀려 그를 밀어낼 수 없었다. 애증이 담기고 담겨 꿉꿉하게 농축된 말은 저같은 백지의 도화지에겐 최악이었고, 여전히 저항할 수조차 없었다. 수업종은 친 건가.... 이제서야 자신들의 학교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오늘따라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아무래도 다음 수업은 이미 시작한 것 같았다. 학생회 신분으로 차마 수업을 땡땡이칠 수는 없었던 사에구사 아키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욘... 쨩. 지금 수업시간이잖아. 종은 아까 진작에 쳤는데 아마 우리가 못 들은 것 같아.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오늘은 이만 교실로 돌아가자.”
    “왜?”
    “왜냐니...! 그야....”
    “나는 아키나처럼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해야 할 이유도, 의무도 없는걸? 난 그냥 밖에서도 아키나를 볼 수 있어서 학교를 다니는 거야.“
 
 
    돌아오는 말에 더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그래 그렇지.... 맞다. 욘 쨩은 굳이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겠구나. 내가 집에 없으면 외롭겠지. ....그럼 욘 쨩은 어쩌면 나 때문에 밖으로 나돌고 싸움을 하고 다니는 걸까. 생각이 여기까지 닿았을 땐 덜컥 겁이 났다. 마음 한켠 자리잡았던 걱정이 과열되더니 섬광이 터진 듯 곳곳에 지울 수 없는 잔해를 남겼다. 한번 나쁜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에... 아키나? 농담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
    “놀랐어?“
 
 
    정말이지.... 나를 너무 잘 안다. 어떨 때는 화가 날 정도로. 그러고보니 나는 네가 지금 당장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때가 많은데. 그에 비해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하루에도 수없이 표정을 읽히고 감정이 들통난다. 늘 생각 없이 살고, 항상 바보 같은 말만 늘어놓는 너에게 난 질 수밖에 없으니까. 숙명이라고 하면 숙명이고 속죄라고 하면 속죄였다.
 
 
 
    아키나를 놀라게 해 버려서 분위기도 깨졌는데 오늘은 이만 돌아갈까~ 너 은근 내 탓인 것처럼 말한다? 아니라곤 못하겠네~ㅎㅎ 그가 내뱉는 말은 분명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뜨겁게 타 버린 초콜릿처럼 어딘가 씁쓸한 맛이었다. 오늘도. 이런 식의 어리광, 절대 받아주면 안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지고 들어가는 건 나였다. 앳되고 뒤틀린 감정을 보고도 모른 채 할 수는 없었다. 겨우 떨어져나간 그에 옷무새를 정리하면서 이젠 더 이상 받아주지 말자 생각하면서도. 속까지 문드러진 너를 결국 안아 줄 수밖에 없으니까.